두 사람이 듀엣으로 부른 ‘친구야’는 지난 5월 MBC ‘가요베스트’에서 성인가요부문 1등에 우뚝 서며 트로피를 받은 데 이어, 지난 7일 녹화된 OBS ‘가요베스트 10’, 10일 열린 MBC ‘가요베스트’에서 잇따라 정상의 감격을 누렸다. 올초 ‘inet 성인가요 베스트 50’에서 1위를 차지한 것까지 합하면 현재 운용되고 있는 대표 성인 음악 순위 프로그램을 모조리 평정한 이례적인 기록을 소유한 것이랍니다.
1년여 전 언더 계통의 무명 실력 가수 ‘박진광’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김범룡’이라는 이색 만남으로 시작된 이들의 최근 낭보는 국내 가요계에 무척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성인 음악=트로트’로 굳어지는 상황 속에서 이들은 트로트가 아닌 포크록이라는 장르의 곡으로 정상에 등극했다.
특히 가요계의 허리를 두껍게 받쳐줘야 할 과거 최고의 가수들이 잔뜩 움츠리고 있는 최근 분위기임을 감안한다면 여느 중견 가수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제공하는 뜻깊은 의미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하루 3~4개의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여름을 더욱 뜨겁게 나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성인 차트 석권에 따른 벅찬 소감과 함께 이들이 가요계와 중견 가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들어봤다.
▲소감? (김범룡·이하 김=)정말 어려운 일을 해냈지. 젊었을 때나, 내가 직접 제작한 후배가수들의 음반으로도 늘 1등을 해봤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느낌이 다르더라고. 그 기쁨이 어느 정도냐고. 과거 받았던 트로피를 모조리 밀어버리고 요즘 트로피를 가운데 떡 하니 두었지. 눈물이 맺히더라니까. 그 어느 때보다도 팬들의 깊숙한 사랑을 느껴. 날 믿어준 옆에 있는 박진광씨에게도 감사하다 싶어. (박진광·이하 박=)범룡씨야 많이 받았겠지만 나는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탄 트로피야. 묻혀 있었던 사람에게 손내밀어준 범룡씨, 그리고 지난 30여년의 노래 인생을 생각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집에서 트로피 탁자 위에 올려놓고 혼자 앉아 한참이고 들여다봤던 것이지.
▲좋아진 분위기를 실감하는지? (김=)처음에는 어깨 쪽(?) 사람들이 그렇게 이 노래를 좋아하더라고. 이후 점차 중·장년층으로 퍼져나가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들리고, 또 TV 드라마 속에서도 차츰 울려퍼지더라니까. 지금은 쉴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로 스케줄이 밀려들어. (박=)처음에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는데 한 6개월이 지나니까 범룡씨보고 “친구 안 왔어요?”라고 묻는 팬이 생기더라고. 지금은 내 이름도 불러주고 사인도 꼭 함께 받으려하고. 요즘은 매일이 행복해.
▲팀을 꾸리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박=)팀워크가 어땠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데 티격태격한 일이 딱 한 번 있었지. 범룡씨에 비해 내가 너무 무시 받는다는 생각이 그렇게 견디기가 힘들더라고. 범룡씨와 딱 12시간 두절이 됐는데 다시 만났을 때 아무것도 묻지 않더라고. 그때서야 ‘아 내가 옹졸했구나’라고 느꼈지. 그 이후부터는 어릴 적 친구 이상으로 의지하며 지내. (김=)사실 자존심이 강했던 20대에 만났으면 분명 하루도 안 돼서 팀이 깨졌을 것이야.
▲두 사람 다 듀엣이 처음이었을 텐데 (김=)사실 우리 사이에는 젊었을 때 비화가 하나 있지. 30여년 전 명동의 쉘부르에서 노래 대회가 있었는데 그때 진광씨가 바로 나를 떨어뜨렸어. 진광씨가 심사위원이었거든. 이종환씨가 늘 아끼던 가수였을 만큼 이 계통에서 유명했던 진광씨가 등에 불이 14개를 켜줘야 합격하는데 딱 13개만 주더군. 끝나고 가서 따졌던 것이 날 떨어뜨린 이유가 뭐냐고 정말로 했지
(박=)그때 부른 자작곡이 바로 국민 가요가 된 ‘바람 바람 바람’이야. 그 뒤로 내가 오히려 피해다녀야 했어. 30여년 동안 그랬지. 이 사람이 몇 년 전 내게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난 그랬겠지. (김=)나 이제 솔로활동을 하게 되면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걱정부터 하고 있어. 대기실에서도, 무대에서도 늘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재미있는지. (박=)범룡씨와 함께 수련도 함께하고 있어. 방송사 대기실에서도 둘이서 틈틈이 수련을 하고. 범룡씨는 참 모범적인 가수야. 배울 게 너무 많아. 덕분에 술도 10분의 1로 줄였고, 운동도 하고. 내 아내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범룡씨한테 전화를 다했답니다.
▲노래의 인기 배경은 뭐라 생각하는지? (김=)일단 트로트 말고 성인들이 들을 만한 스탠더드 가요를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 그리고 노랫말이 힘들게 사는 중년들의 가슴에 쏙 들어갔기 때문일 거야. 노래 부를 때 이렇게 보면 전화기를 꺼내 친구들한테 전화하는 이들이 꽤 있어. (박=)여자들도 남자랑 비슷한 것 같아. 은근히 여자들이 의리가 있는가봐. 특히 결혼하고 친구 잊고 살았던 여자분들이 그렇게 이 노래를 좋아하더랍니다
▲최근 수상이 여러 의미를 갖는데 (김=)성인 가요는 원래 트로트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잖아. 근데 기타들고 노래했던 이들조차 모두 트로트로 바꿔 컴백하고 있더군. 이해는 가. 불안하니까 그랬겠지. 음반도 안 내고 모두 라이브 클럽에 머물러 있는 것도 불안해서 그랬을 거야. 과거 활동했던 동료가수들이 참 힘이 많이 된다며 전화를 해오곤 해. 그 점이 제일 뿌듯해. (박=)우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 들어 포크 쪽 사람들이 그랬답니다.